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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여행/<중국> 기행

[서안 西安] 화청지

 


[서안 西安] 화청지


 시안 여행 2일 째입니다
<2박 3일 코스>
1일 : 시내 - 종루 - 남문 - 청진대사 - 소안탑 
2일 : 화청지 - 진시황릉 - 병마용 
3일 : 대흥선사 - 산시역사박물관 - 한양릉 







< 화 청 지 >
 
화청지는 43 도시의 온천수가 풍부해서 주나라 때 부터 황제의 휴양지로 이용되던 곳이에요.
하지는 우리는 당나라 절세미녀! 양귀비 덕분에 화청지를 더 잘 알고있죠?
매년 10월이 되면 현종과 양귀비가 이곳에서 이듬해 봄까지 지냈다고 해요. 

  



화청지 입구에요. 
서양 꼬마들이 너무나 귀엽죠?
양귀비를 떠올릴 수 있을 많큼 빨깐 예쁜 꽃들이 제일 먼저 환영해 주네요.
북한의 김일성도... 이 곳을 다녀 갔군요.
자 입구는 이쯤에서 해두고 본격적으로 화청지의 풍경을 살펴 볼까요~?  Let's go~~   

 











 화청지는 휴양지였던 만큼 정원 같은 느낌이 많이 나요.
시간이 있으시다면 여유를 갖고 산책하듯 천천히 거닐어 보시는 것도 좋으실 것 같아요. 생각했던 것 보다 꽤 넓어요^_^ 



 

 

 




양귀비 모습을 재현한 조각이에요.  
예쁜가요?  화청지에서 가장 유명하고 꼭 사진 찍어야 하는 곳입니다. 
보이죠?  양귀비와 사진 찍기 위해 주변에 둘러 싸고 있는 사람들...
양귀비와 단둘이 사진찍기위해서는,,,
지치지 않고 기다리는 끈기,
새치기 당하지 않는 굳건함,
서가 왔을때 잽싸게 달려가는 민첩함 이 필요하답니다. ^_^







 이 쯤에서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이야기> 를 들려 드릴게요

  736년 당(唐)나라 현종(玄宗)은 사랑하던 무혜비(武惠妃)가 죽은 뒤 3000명이나 되는 후궁들도 마다하고 자신의 18번째 아들인 수왕의 부인 즉, 며느리인 수왕비(壽王妃)의 미모에 반했어요. 아들 수왕을 변방에 보내고 자신이 수왕비를 차지하는데 이 수왕비가 바로 양귀비에요.
 
 56세 시아버지인 현종과 22세 어린 며느리 양귀비의 사랑..
현재는 물론 당시에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겠죠? 


 현종은 중신들의 반대에 굴하지 않고 귀비(貴妃)에 책봉하여 양귀비로 불리게 되었어요.귀비의 지위는 황후 다음이었으나 이때 황후가 없었으니 사실상 양귀비가 황후 행세를 했다고 해요. 현종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아 그녀의 친척들 까지 고관의 자리에 올랐고 갖은 부패를 일삼았다고해요.


 현종은 양귀비와 향락에 빠져 국정을 게을리 했어요. 결국 756년 안사의 난을 맞아 쓰촨으로 피난을 가던 당 현종은 장안(長安)에서 군사들이 양귀비와 그의 오빠 양국충의 처벌을 주장했고 할 수 없이 양국충을 죽이고 양귀비에게 자살을 명했데요. 결국 양귀비는 길가의 불당에서 목을 매어 자살했다고 해요.

 정사(正史)에는 양귀비를 절세의 풍만한 미인이며 가무에도 뛰어났고 군주의 마음을 끌어 당기는 총명함을 겸비했다고 쓰여 있으며 이백(李白)은 양귀비를 활짝 핀 모란에 비유했어요. 


 자 이제 현종과 양귀비 로맨스의 흔적을 한 번 둘러 보실까요?




연화탕이에요
현종이 목욕하던 곳이래요. 





 
해당탕이에요.
양귀비가 목욕하던 곳인데 탕의 모양이 해당화를 닮았다고 해서 해당탕이래요.
 

 


 



위에 양귀비 사진 있죠?

거기 보면 양귀비 상 뒤로 건물이 있어요. 바로 그 건물이 이 건물이랍니다. 
겨울에는 현종과 양귀비가 이곳 화청지에 머물렀기 때문에 이 곳에서 중요한 국사가 이루어 졌데요..  
현종이 여러 신하들과 함께 목욕하면서 국사를 의논했다네요.
  작은 전시회..처럼..
탕 주변으로 양귀비와 현종의 사랑이야기를 담은 그림들이 전시되어있어요. 










양귀비의 머리 말리기

양귀비는 목욕을 한 후에
저기 높은 곳에 올라가서 머리를 말렸다고 해요.
머리 말리는 곳도 따로있고..
양귀비는 참 ..


 


 


   중국 황제들에게 인정 받았던 43도씨의 온천

 피부도 고와지고 건강해진다는 온천 저도 온천의 기운을 느끼고 뛰어갔죠.
 그런데 돈을 내야 하더라구요. 0.5 元..................... 
 물에 손 한번 담그겠다는데 그걸로 돈을 받나 싶어서..
 그냥 멀리서 이렇게 지켜만 봤답니다

 뭐 물 마시고 나오는 사람들 보니 별로 이쁘지도 안더라는..^^;; 

 




 그런데 화청지가 유명한 것은 양귀비와 현종 때문만은 아니라고 해요!!!

 화청지는 중국의 현대사를 바꿔놓은 <서안사변>의 현장이기도 해요.
 길게 설명하면 너무 어렵고 지루 하니 간단하게! 들려 드릴게요 


 1930년대 중국은 밖으로는 일본 제국주의가 침략하고 있었고 내부로는 공산당과 국민당의 내전이 한창이었어요. 국민당 장제스는 안내양외(安內攘外) 즉 국내의 통일을 이룩한 뒤 일본과의 항전을 주장했데요. 그래서 치열한 내전이 개시되었어요. 

 하지만 만주가 일본군에 점령되는 상황에서 일본과의 전쟁 보다 공산당과 내전을 벌이는 것에 반대하는 세력이 있었어요. 이들은 화청지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장제스가 이들을 독려하기 위해 방문했을 때 장제스를 강제로 감금 시켰는데 이를<서안사변>이라고 해요.
 
  장제스는 8개 요구 조항에 합의 하고 감금에서 풀려나 다시 국민당, 공산당이 협력하여 항일 전선에 나서는 2차 국공합작이 이루어 져요. 


 뭐.. 이부분만 딱 잘라 보려니 무슨 말인지 잘 모르시겠죠? 저도 그래요.
중국도 우리나라 만큼이나 혼란한 근대시기를 거쳤구나... 하는 건 알 수 있죠^_^


  여기 화청지 뒤편에는 이런 현대사의 흔적도 있으니 한번 가신 발걸음..
 구석 구석 놓치지 않고 잘 살펴보고 오셔요~!! 

 

 

 

 




여기서 장개석이 감금되 있었어요.

들어가진 못하지만 창을 통해서 내부를 볼 수 있어요.
쨘~ 감금 당해도 뭐 꽤 잘해놓고 살았네요.

 


 



맨 왼쪽이 장개석 가운데가 장개석을 감금시킨 장학량이라는 사람이에요.
나중에 장개석한테 감금 당했데요.








벽에는 이렇게 총탄자국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요. 꺄~~~~~>_< 
아! 화청지 입장료는 70元 이구요.. 

 



이날 코스는 시내에서 조금 떨어져 있기 때문에 함께 간 일행과 택시를 타고다니면 편하실 거에요.

그리고 화청지 근처에 식당이 있긴 한데 모두 비싸고 맛도 없으니 먹을 것을 조금 챙겨 가셔서 시장하실 때 챙겨드시면 좋을거에요~^_^*
화청지에서 일행들과 함께 택시를 타고 진시황릉으로 이동하시면 편해요.
시내 외각지라서 버스도 편리하지 않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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